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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나 최효정 인터뷰
닉네임
관리자
등록일
2018-01-22 13:51:45
내용

칭찬받아 마땅한 한국 여자
100인의 릴레이 인터뷰, 한국여 자전

충분히 멋지지만 자기 평가에 인색한 한국 여자들을 위한 강제 칭찬기!
성공보다는 그 자체로 의미 있는 대한민국 여성들의 삶을 조명합니다.

 최효정, 라이프타임이 당신의 삶을 칭찬합니다. 



"나는 [ 연구하는 ] 중이다"

한국여자전, 그 마흔일곱 번째 인터뷰

Profile

이름 : 최효정
직업 : 프리랜서 무용가, 발레 스튜디오 대표
취미 : 커피 로스팅, 사진 찍기, 전시 관람
주요 작업 : 유니버설 발레단(UBC) 경력, 송인섭 밴드 / 허소영 밴드 등 콜라보 공연, 2017 청계천 빛초롱축제 공연 등

발레리나의 길에서
문화를 공유하는 예술가의 길로 나아간
무용가 최효정을 만나다.



Q. 발레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A. 7살 때 어머니가 무용학원에 보내주셨어요. 아무래도 딸이다 보니 예쁜 옷 입고 무용하는 모습이 보고 싶으셨나 봐요. 그런데 그 무용학원이 발레학원이었어요. 아마 제가 그만두고 싶다고 말했다면 그만뒀을 텐데, 어린 제가 한 번도 그만 다니고 싶다는 이야기를 안 했대요. 그렇게 운명처럼 초등학교 때부터 전공으로 발레를 시작했죠. 여전히 제가 지인들에게 자주 하는 이야기인데, 만약 그 무용학원이 한국무용을 가르치는 곳이었다면 저는 한국무용가가 됐을 거라고 생각한답니다. 





Q. 지금까지도 발레를 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A. 초등학교 때부터 발레 연수로 유럽을 오갔어요. 그러다 보니 아예 유학을 가고 싶어 부모님을 졸랐죠. 그렇게 16살에 혼자 프랑스로 발레 유학을 떠났어요. 불어도 영어도 못하는 상태로 말 그대로 혼자 간 거예요. 그런데 발레학교를 다니는 매일이 설레고, 꿈처럼 좋았어요. 그래서 10년 동안 프랑스와 미국에서 유학하며 발레를 배웠죠. 유학 생활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자연스레 유니버설발레단에 입단했어요.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발레단이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 발레단이었거든요.
그렇게 제가 발레단에서 6년 정도 발레리나로 살다가 서른이 되고 보니 이제는 그만하고 다른 삶을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시다시피 아무래도 몸을 쓰는 일이라 발레리나도 운동선수처럼 은퇴가 빠른 편이에요. 그런데 보통 선배님들이 결혼한다고 청첩장 주며 은퇴하시더라고요.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더해보고 싶은데, 발레로 할 수 있는 게 더 많지 않을까? 싶었어요. 제2의 인생을 살아보고 싶어서 4년 전에 은퇴 공연하고, 발레단을 나왔죠. 그 당시에 ‘나는 더 이상 무대는 안 서, 그만할 거야’ 하면서 나왔는데, 계속 프리랜서로 제 무대가 이어지고 있네요.





Q. 콜라보 형식의 무대에 대한 관심은 언제부터 생기셨나요?
A. 저는 원래 다양한 문화에 관심이 많았고, 취미도 여러 가지였어요. 미술관 가는 것도 좋아하고 음악 듣는 것도 좋아하다 보니 그런 쪽으로 지인이 많았어요. 특히 음악 하는 친구들도 많았고요.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다 다음 공연같이 할래? 그럴까? 이런 식으로 인연이 이어지면서 발레단 은퇴 후에는 자연스럽게 외부 콜라보 공연도 많아지더라고요.
독특하게 영화배우 심은경 씨와도 공연한 경험이 있어요. 피아니스트, 저 그리고 은경 씨 이렇게 세 명이 무대를 이끌어가는 기획 초청 연주회였어요. 이것도 음악 기획사에 아는 분 통해 사석에서 이야기 나누다가 다음 공연이 기획되고 있는데 같이 해보실래요? 이렇게 이어졌죠. 이런 게 다 사람 인연인 것 같아요.



Q.  클래식 발레에서 한 걸음 나아가신 거네요?
A. 
그렇죠. 클래식 발레라고 하면 대부분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같이 화려하고 많은 무용수가 출연하는 규모가 큰 공연을 떠올리시잖아요. 그런 공연은 사실 대형 발레단에서 해야 멋진 공연들이에요. 제가 독립하고 나서는 하는 공연은 아무래도 인원도 좀 적고, 조그마하게 창작같이 할 때도 있고, 클래식 발레의 한 부분을 발췌해서 공연하기도 해요. 대형 발레단에 있을 때는 스스로 한 부분이라고 느낄 때도 많았어요. 여러 무용수들과 합을 맞추고 다 함께 공연을 이끌어간 거예요. 반면에 혼자 무대를 하다 보면 제가 독립적으로 많은 부분을 만들어야 해요. 저는 그게 좋아요. 발레단에서 나오게 된 계기 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하나의 발레단에서 6년 차쯤 되다 보면 공연의 레퍼토리가 읽혀요. 같은 배역 같은 사람, 어떻게 보면 안정적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정체된 기분이 들기도 했어요. 저는 제가 기획도 해보고 구성도 해보고 이런 걸 좋아했거든요. 요즘은 바이킹 타고 있는 기분이에요. 실패할 때도 있고, 성공할 때도 있지만 현재에 엄청나게 만족해요! 





Q. 그럼 현재 하시는게 교육 기획, 직접 무대까지 하시는데 교육에서는 어떤 즐거움이 있으신가요?
A. 제 스튜디오에 성인 취미반이 있어요. 제 나이 또래 분들이 회사 퇴근하고 오셔서 발레를 배우시는 거예요. 그것도 그 나름의 즐거움이 있어요. 아무래도 같은 세대의 사람들과 만나서 재밌게 발레를 할 수 있다는 게 오히려 제겐 스트레스 푸는 통로예요. 어떤 분은 프로였다가 기초부터 다시 가르치는 일이 재미없지 않냐, 묻곤 하시는데 제게 정말 재밌는 일이에요.



Q. 발레의 대중화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계신건가요?
A. 
거창하게 ‘발레 대중화’는 잘 모르겠어요. 제 스스로 그렇게 영향력 있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요즘의 저는 발레리나라고 스스로 소개하기보다는 무용가라고 하는 편이에요. 왜냐면 무용이 전보다 생활화가 되었고 무용 치료 같은 것도 있잖아요. 기초반 분들께 항상 하는 말이 ‘한 시간 동안 좋은 음악 속에 몸을 움직이면서 스트레스 푸시고 예쁜 옷 입고 공주 한번 돼보자, 어린 시절의 꿈을 한 시간 동안 이루자!’는 말을 많이 해드려요. 저는 저를 믿고 찾아오시는 분들에게 무용으로 치유가 된다면 정말 재미있게 임하고 있어요. 그게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믿고요.





Q. 롤모델이 있으신가요?
A. 제 어머니예요. 저는 사춘기를 외국에서 보내기도 했고, 떨어진 기간이 길어서 그런지 어머니와 가장 절친이에요. 한 번 통화하면 몇 시간 동안 수다를 떠니 주변 사람들도 어떻게 그 나이에 엄마랑 그렇게 친하냐 하더라고요. 제가 유럽에서 혼자 사는 동양인이다 보니 사람들에게 배신당한 기억이 많아요. 그래서 상처받기 싫어서 사람들에게 담을 쌓는 것도 있고요. 그래서 언제나 제 편인 어머니가 제 인생 친구이자 롤모델이에요. 늘 어머니는 제게 필요한 조언을 해주시고 저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주니까요.



Q. 취미로 커피로스팅을 직접하신다고요?
A. 
처음엔 핸드드립 커피에 관심이 많았는데, 커피콩을 어떤 걸 쓰느냐, 누가 볶느냐에 따라 맛이 많이 달라지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처음엔 여러 브랜드를 구입해봤죠. 그러다 문득 내 입맛에 맞는 걸 내가 직접 만들어도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어요. 인터넷을 찾아보니 생각보다 집에서 로스팅하시는 분들도 많더라고요. 저도 생두를 사서 도전해봤는데 이리저리 시행착오도 많았어요. 이젠 제 방식이 생기고 제가 좋아할 만 한 알맞은 로스팅도 알게 되었죠. 뭔가를 만들면서 잡생각도 사라지고 스트레스도 풀리더라고요. 지인들께 선물로 드리면 굉장히 기뻐해 주셔서 뿌듯하기도 합니다.





Q. 나는 [    ] 중이다.
A. 
성인반이던 아이들 반이던 간에 항상 오늘은 뭘 가르칠지, 이 사람들이 여기 왔다가 나갈 때 단 한 가지라도 ‘아 나는 오늘 이걸 배웠구나’ 이런 느낌이 들게끔 내가 무엇을 해줘야 할까 공부하고 연구해요. 공연 제의가 들어왔을 때도 마찬가지예요. 저도 사람이다 보니 대충 했던 공연이 없었다고는 말씀 못 드리겠어요. 그런데 그런 공연과 제가 진심으로 노력한 공연은 정말 큰 차이가 있더라고요. 그 공연의 특징이나 중요한 지점을 고심하고 연구한 결과물은 정말 달라요.
예술은 보는 사람의 마음속으로 무언가가 와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그건 꼭두각시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무엇을 하든 열심히 연구해서 관객에게 감동을 주고 싶어요.


“나는 [ 연구하는 ]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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